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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식령 스키장? 학생들에게 돈 뜯어 만든 겁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2.23


▲ 서울 종로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한 지성호 '나우(NAUH)' 대표. 밝은 표정이지만 북한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 ⓒ공준표 뉴데일리 기자


20대에 탈북, 9년째 북한인권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성호 ‘나우(NAUH)’ 대표를 만났다. 올해 37살인 지성호 대표는 어머니, 동생 2명과 함께 탈북했다. 그는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열차 사고로 팔과 다리를 잃었다.

2010년부터 ‘나우’를 통해 북한 주민 구출 등 북한인권활동을 펼쳐 온 지성호 대표는 지난 1월 3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연두교서에 초청받은 뒤 국제적인 스타가 됐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나우’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지성호 대표는 美언론과의 특집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지성호 대표는 자신을 “정치인이 아니라 북한인권운동가”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해석을 붙이지 말고 북한인권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는 뜻이었다.

지성호 대표에게 ‘북한에서의 장애인 인권은 어떤가’ 물었다. 그는 자신이 고난의 행군 시절 열차 사고로 장애인이 된 경험을 떠올리며 “제가 볼 때는 북한의 장애인들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거의 70% 이상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 대표는 “그 전까지는 그나마 식량 배급 정도는 해줬는데 고난의 행군이 되면서 정부에서 아무런 보살핌도 해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때 북한 노동당의 핵심 당원들도 거의 굶어죽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권력을 누리던 노동당 당원들이 배급 체계가 무너진 뒤에도 북한 정권만 믿다가 굶어 죽었다는 설명이었다.

북한에서 장마당이 활성화된 이후 주민들이 나름대로는 잘 먹고 산다는 외부 세계의 평가에 대해 지 대표는 “고난의 행군 이후로 시내 중심가 장마당에서 부패 공무원과 손잡고 많은 돈을 번 사람도 있기는 하다”며 “하지만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주민 대부분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날품팔이’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지 대표는 “특히 북한 시골 주민들은 여전히 봄만 되면 고리대금 빌려 겨우 먹고 살 정도로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 대표는 “그나마 장마당이 퍼진 뒤에 자란 2030세대는 노트텔(휴대용 DVD 플레이어)이나 USB 등을 통해서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접한 뒤에 바깥 세상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해졌지만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 지성호 대표는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에 대해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가감없이 밝혔다. ⓒ공준표 뉴데일리 기자.


지 대표는 북한이 선전매체를 통해 자랑하는 평양 여명거리나 원산 마식령 스키장 등에 대해서도 “그것들 전부다 주민과 학생들의 피와 땀으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김정은이 자랑하는 ‘마식령 스키장’을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지 대표는 “북한에 국가예산이 많아 도심이 변화되거나 건축물을 짓는 게 아니다”라면서 “마식령 스키장의 경우에도 학교마다 학생들에게 돈을 강제로 걷어서 모은 돈으로 지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에서 보통 사람들이 받는 월급이 1,500~1,800원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매달 내라는 돈이 부모 월급 이상입니다. 이걸 안내면 어떻게 하느냐? 체벌은 기본이고 다른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줍니다. 이러니 학생들이 어찌 학교에 가겠습니까?”

지 대표의 설명을 근거로 추론하면,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외화벌이가 시원치 않아 지자 북한 주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지 대표는 10대 때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장애인이 됐다. 북한은 자유 진영과 달리 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북한에서 장애인이 된 뒤에는 어땠느냐”고 물었다.

지 대표 본인은 사고를 당한 뒤 2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고 답했다. 이후 굶주림을 이기기 위해 ‘꽃제비’가 된 뒤에는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 당시에는 ‘꽃제비’ 내에도 서열이라는 게 있었다고. 이때 지 대표는 다른 꽃제비들과는 달리 맞서 싸웠다고 한다. 나중에는 꽃제비 왕초를 혼내줬다고 한다.

지 대표는 “북한에 있을 때도 제 상황을 비관하지만은 않았다”면서 이때부터 북한 정권의 문제점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당국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의 조모가 북한 당국의 지시를 따르다 굶주림 끝에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 9살 때 지성호 대표의 모습(화살표).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 동상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이다. 북한은 김씨 왕조라면 뭐든 우상화하는 버릇이 있다. ⓒ공준표 뉴데일리 기자- NAUH 제공


지 대표는 지난 1월 말 트럼프 美대통령의 연두교서에 초청받은 뒤 국제적인 스타가 됐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고 한다. 그에게 여러 번 있었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질문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김여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꼽았다.

지 대표는 “저는 북한인권활동을 하므로 정치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고 전제한 뒤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지 대표는 “김여정은 정부에서 귀빈으로 초청해 평창에서 온 것이어서 뭐라고 평가하기는 그렇고 사람마다 모두 생각이 다르지 않느냐”면서도 “북한 정권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한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했고, 그 전에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故박왕자 씨 살인 사건도 있어서 그리 좋게 보지는 않는다”고 못박았다.

지 대표는 “다만 김여정을 보면서 한국에서 좀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면 ‘목적’을 달성했을 텐데 거만해 보였다”면서 “북한이 여전히 한국을 자기네 체제랑 비슷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북한이야 김정은의 말 한 마디로 사람 목숨이 오가고 정책이 시행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한국에서는 대통령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5천만 국민 전체가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한국은 국민이 지도자를 뽑는다는 사실을 북한 지도부가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었다.

지 대표는 자신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떠올리며 “혹시 김여정도 그래서 그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까”하고 추측했다.

그는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마치 30년 뒤의 미래에 온 것 같아서 걱정했다”며 “제가 과연 여기 세상 사람들에게 잘 맞춰서 살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김여정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김여정이 아무리 스위스 유학을 했고 다른 나라 여행을 했다고 해도 전쟁 이후 이처럼 고도로 발전한 서울의 고층 빌딩 등을 보면 적잖이 놀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 지성호 대표가 이끄는 '나우(NAUH)'의 홍보용 팜플렛. 북한주민 구출기록을 표시해 놓았다. ⓒ공준표 뉴데일리 기자-'나우' 제공


지 대표가 우리 사회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과 자신의 활동, 동료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당하지 않기를 원했다.

지 대표는 본인은 인권운동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인권운동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일부 사람들에 대한 경고였다.

그는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인권운동가로서의 입장에서 북한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도 북한인권문제를 정치적 해석과 시각이 아닌 북한 주민들의 생활 측면으로 순수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지 대표는 “트럼프 美대통령을 비롯해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도와주신 전 세계 모든 분 덕분에 올 겨울 한파에도 따뜻함을 느꼈다”면서 “지금 상황에서 후원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마음, 북한 정권과 주민을 따로 보고 생각하는 시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래도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김정은 정권과 주민을 따로 생각하는 시각이 증가한 것 같아 기쁘다”고 웃으며 답했다.

지 대표가 이끄는 ‘나우’는 북한인권운동의 하나로 북한 주민 구출 활동도 벌이고 있다. 자금의 대부분은 후원을 통해 얻었다고 한다. 2017년에는 북한 주민 100명 구출을 목표로 했는데 아쉽게도 70여 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 대표와 함께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2030세대였다.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도 있었다. 북한 체제의 실상을 깨달은 사람들이 다시 자기 또래의 사람들을 데려오고, 그들이 또 자기 또래를 데려오면서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는 것이었다.

▲ 지성호 대표는 인터뷰 동안 "저는 북한인권활동가지 정치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공준표 뉴데일리 기자.


“남북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묻자 지 대표는 “특별히 생각한 것은 없지만 북한 사람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대신 북한처럼 주입식이 아니라 남한 식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지 알려주고 싶다”면서 “그리고 그때 북한 주민들이 ‘우리가 고생할 때 당신은 뭐했느냐’고 물으면 ‘나는 평생 여러분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길이 옳았다’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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