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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의 '창건절'...도시락 메들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9.27

에는 국군의 날이 있다면 에는 인민군(북한군)창건절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날은 매년 10월 1일로, 육군의 날(10월 2일)·공군의 날(10월 1일)·해군의 날(11월 11일)[1]을 한데 합친 것이라면 북한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을 조직했다는 1932년 4월25일을 기념한다. 
 
그나마도 70년대 말 까지는 해방 후 김일성이 북한군을 창건했다는 1948년 2월8일을 군 기념일로 정해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8년부터 갑자기 항일빨치산의 전통을 계승한다면서 창건일을 바꾸어 버렸다. 지금도 그때를 경험한 사람들은 북한당국의 대표적 역사변조 사례로 ‘2.8절’과 ‘4.25’를 꼽고 있다. 
 
그렇게 북한군의 창건일은 1948년에서 1932년으로, 무려 16년간을 거슬러 역사외곡의 산 증거가 되고 있으며 필자도 한때 그러한 창건일을 해마다 맞은 바 있다. 그리고 지금 다가오는 국군의 날을 그리며, 북한군 창건절의 슬픈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북한군 군인들의 ‘적’은 굶주림  
 
1992년 9월, 신병훈련을 마치고 북한군 4군단 통신결속소에 배치 받은 나는 다른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피골이 상접해 갔다. 입대하여 군인선서를 외칠 때 까지만 해도 오동통하던 볼 살도 꺼져버린 지 오래고, 넙데디한 군복에 휘감겼던 몸통도 야위어 갔다. 
 
본대에 배치 받은 지 불과 6개월도 못 되어 군복 허리띠(벨트)의 구멍을 네 개나 줄여야 했고 바지며 치마는 줄이려고 해야 더 줄일 곳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모든 군인이 그랬다. 아침 훈련점검시간엔 군인들 대부분이 서있기 조차 힘들어하던 형국이었다. 
 
군복위에 드러난 상태만 안 좋은 게 아니었다. 이른바 2차 상태라고 하는 여군들의 건강 및 위생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생리를 상실한 사람, 가슴이 메마르다 못해 옆에서 보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사람...게다가 배고픔은 어느 한시도 사람을 괴롭히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먹어본 게 개도 안 먹는다는 소나무 껍질로 만든 ‘송기떡’이었고 틈만 있으면 농장 밭으로 기어들어 캐어먹던 배추뿌리며 무 꽁다리였다. 그렇게 북한군 모두가 영양실조상태에 빠져들 무렵,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김정일이 군인들의 ‘먹는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관심’이라는 게, 북한의 모든 지역 및 국영 기업소들이 인접부대들을 하나씩 담당해 원호사업을 하라고 내린 불호령이었다. 법적 구속력은 물론 실현 가능성도 희박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김정일의 지시인데 대놓고 반대하는 기관이나 기업소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히 당 기관이나 보위기관, 외화벌이 기업소 등은 나름대로 힘이 있었으니 맡은 부대에 대한 원호사업에 실질적인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 다수 기업소들은 소속 노동자들에게 공급할 식량도 부족했던 상황에서 누구를 지원하고 자시고 할 여력이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 
 
다행이랄까, 우리 통신결속소를 담당했던 기관은 좀 힘이 있었다. "특히 국가적인 명절 때 군인들에게 밥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일 수 있도록 하라"고 한 김정일의 지시가 있어 명절 때 만큼은 먹을 걸 싸 들고 부대로 찾아오곤 했다. 그래봐야 1년 치고 군인들이 쇠는 명절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4월25일이라는 창군절 때는 기다려지는 '원호사업'이기도 했다.
 
도시락 하나에 울고 우는 병사들 
 
그해 4.25일도 중대군인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손님맞이로 바빴다. 빗물에 씻겨 내려간 중대 앞 도로에 석비레 흙을 등짐으로 날라다 다시 깔았고, 이름하여 ‘점심 만찬’ 준비를 위해 알루미늄으로 된 밥그릇과 국그릇을 모래로 반짝반짝 닦아 내기도 했다. 
 
여기다 사회(지원기관)에서 만들어온다는 맛있는 음식을 집어먹기 위해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젓가락까지 잿가루로 닦아 내는 등 군인들 모두가 명절 분위기에 들떠있었다. 
 
오전 11시, 김정일의 지시대로 <인민군을 원호하기 위해> 우리부대에 찾아온 사람들은 황해남도 해주시 지방산업총국의 간부들이었다. 
 
이들이 탄 승용차 뒤로는 ‘승리 58’이라고 하는 북한산 화물트럭이 두 대나 따라 붙었다. 오로지 ‘점심만찬’에만 정신이 쏠려있던 군인들의 시선이 일시에 화물트럭에 꽂혀버렸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과연 저 트럭에 뭐가 실렸을까? 
 
차에서 내린 해주시 지방산업총국 간부들이 반갑다며 손을 내 밀었지만 나를 포함한 군인들의 시선은 트럭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고기일까, 떡일까? 아니면 순대?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중대군인 모두가 행복에 겨워있었고 ‘만찬’의 꿈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드디어 차에서 짐을 부리기 시작했는데, 얼핏 보아도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장군님의 지사사항’이라 그런지 성의를 담은 티가 팍팍 났다. 떡이며 순대, 그 귀하다는 돼지고기까지...어떤 군인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도 했다. 
 
더하여 우리 결속소의 여군 전체에겐 중국산 분이며 파우더, 칫솔세트가 공급된다고 하니 우리 부대는 분명 잘사는 기업소, 힘 있는 기업소를 만난 게 틀림이 없었다. 
 
이런 경우를 처음 접하다 보니 부대지휘관들도 여느 때 같으면 뒤로 빼돌렸음직한 고가의 물건들조차 고스란히 대원들에게 나누어 줬다. 너도 나도 감격에 겨워 서로를 끌어안기까지 했다. 
 
위문방문과 위문공연 
 
하지만 그날 이후로, 군인들은 다시 허기에 내 몰렸고 그때마다 너도 나도 ‘창건 절’의 그 만찬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갑자기 부대전원을 모이도록 한 결속소 소장이 ‘오늘 저녁부터 각 소대가 충성의 노래모임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영문을 몰라하는 군인들에게 결속소 소장은 “이제 얼마 후면 6.25(북한은 6월25일을 전쟁승리기념일로 지내고 있음)명절인데 기업소 군인들이 또 지원물자를 가져 올게 아닌가, 그때 맨입으로 인사하는 것 보다 노래와 춤을 준비해서 보여주면 그 분들이 얼마나 우리를 기특하게 생각하겠는가”며 군인들을 독려했다. 
 
부대장의 말도 일리가 있어보였지만 그보다도 ‘만찬’을 먼저 머리에 또 올린 군인들은 이튿날부터 위문단을 맞이하기 위한 공연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하루 종일 훈련과 노동에 지친 군인들이었지만 그 다음 명절인 6.25를 위해 매일저녁 소금물에 목을 추겨가며 노래연습과 시낭송을 준비했다. 
 
단 두 달 사이에 멋지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군인들의 공연이 완성되었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6.25아침이 밝아왔다. 창건절 처럼 또 한 번 ‘먹어대기’ 위해 군인들은 도열했고, 저들은 ‘원호물자’를 가득 실은 화물트럭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전 11시를 훌쩍 넘어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해주 지방산업총국 간부들은 부대 운동장에 나타나 주질 않았다. 후에 지휘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론 기관의 사정상 매 명절마다 원호사업을 할 수 는 없고, 그래도 4.25일 인민군 창건절 만큼은 꼭 찾아 갈 테니 내년 4.25를 기다려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맥이 싹 빠져버렸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10여년의 군사복무인데, 해마다 한번씩은 ‘만찬’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지 않냐는군인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해가 가고 이듬해 창건절이 밝아왔다. 군인들은 1년 동안 준비한 공연을 멋지게 보여줄 생각으로 들떠 있었고 한편으론 ‘만찬’을 떠올리며 또 기뻐했다. 
 
오전 11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방산업총국의 간부들이 부대정문으로 들어섰고 군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저들을 반겼다. 그런데, 간부들이 탄 승용차 뒤엔 1년 전의 트럭이 아니라 작달막한, 농구방이라 부르는 바퀴 세 개짜리 차량 하나가 달랑 붙어 있었다. 
 
다시 군인들의 머리가 재빠르게 굴러갔다. 저안엔 대체 무엇이 실여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달걀? 아니면 화장품? 드디어 짐이 부려지기 시작했는데, 1년 전에 봤던 돼지고기는 온데간데없고 작은 도시락들이 줄줄이 쏟아져 내렸다. 
 
사정은 더 안타까웠다. 김정일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어 첫 해엔 본때를 보여 원호사업을 했지만 나라가 어렵고, 기업소가 어렵다는 걸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겠냐며 함께 온 사람들이 우리를 다독였다. 그래도 인민군창건절 만큼은 꼭 찾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에 기업소 모든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준비시켰고, 그것을 가져 왔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주섬 주섬 늘어놓았다.
 
눈물이 났다. 한편으론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각자에게 차례진 도시락을 펴 들었는데...웃긴 일이 벌어졌다. 어떤 도시락엔 옥수수밥과 된장 한 덩이가, 또 어떤 도시락엔 감자밥에 콩나물반찬이, 또 누군가가 집어든 도시락엔 색다른 고급 반찬이 들어 있어 기쁨과 탄식이 절로 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먹는것 가지고 장난쳐? 
 
그 다음해에도 어김없이 창건절은 찾아왔다. 첫해 ‘만찬’의 꿈을 버리고 ‘도시락’을 기다리던 군인들 앞에 이번엔 또 다른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해 4.25엔 간부들이 탄 승용차도 세 바퀴짜리 농구방도 보이질 않았다. 대신 해주시 지방산업총국의 예술선전대원 일곱 명과 카메라를 목에 건 사진사가 부대로 들어왔다. 
 
진한 화장에 손풍금 등을 메고 나타난 선전대 배우들은, 지난 해 우리가 했던 위문공연에서 힌트를 얻은 당비서동지가 이번엔 우리가, 도시락 대신 노래를 갖고 가서 군인들을 위문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한 전체 군인들은 정말 미쳐죽겠다는 표정을 참느라...죽을힘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런 군인들 앞에서 한 시간짜리 공연을 달랑 마친 선전대 배우들은 그냥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가뜩이나 부족한 군인들의 밥을 축내는 끔찍한 사태를 연출하기까지 했는데... 
 
“군대 염장무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며 손가락까지 쪽쪽 빠는 등으로 가뜩이나 불편한 군인들의 염장을 질러 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추억이다. 그 후로는 도시락이며 위문공연도 사라져 버렸고 작금의 120만이라고 하는 북한군 군인들에겐 ‘만찬의 추억’도 신화가 되어 버렸다. 
 
그런 북한의 군인들에게 대한민국 국군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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